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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뼛속까지 여천사람

대대로 여천동에서 살았지. 나도 여천동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여천 땅에 태를 묻고 여천 땅에서 큰 농작물을 먹고 여천우물에서 길러 올린 물을 마시고 자랐기에 뼛속까지 여천동 사람이지. 게다가 이날까지 여천 땅을 일구며 살았으니. 마을 주변을 돌아보면 구석구석에 추억이 서려있어. 뒷동산, 개울, 등하굣길, 논두렁, 밭두렁에 내 발자국 찍히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 성장기에는 참외서리, 닭서리를 하다가 혼줄 나고 쫓겨나기도 했지. 그래도 즐거웠어. 시골동네 소년이 가질 수 있는 추억은 다 간직하고 있는 셈이야.

김진해씨 사진

꿈과 현실

대구 영남고에 다녔지. 내일의 나로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꿈꾸었는데, 공무원은 봉급이 너무 적어 포기했어. 졸업 후에는 공군에 입대했어. 이 때 까지는 농사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제대하고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농사를 물려받았지. 6남매의 맏이로써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무게가 내 어깨에 얹혔어. 경험도 없는 어린 것이 모든 것을 떠맡으니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던지…. 동생 6명 모두 장가를 보내고 시집을 보냈어. 맏이의 운명 같은 것이었지. 그과정에서 아내와 많이 다투었는데, 동생들 먼저 챙기는 남편이 곱게 보였겠어? 내 고집대로 밀어붙이기는 했지만 난들 마음이 편했겠어. 이런저런 애환을 다 이겨낸 아내에게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야.

김진해씨 학창 사진

아내, 미안하고 고마운 이름

아내는 경산 옥산 출신으로 옥산댁으로 불렸어. 중매로 만나 결혼했는데, 아내는 어찌나 야무지던지 7천 평이나 되는 밭을 경작하면서 일꾼 안들이고 손수 다 하더군. 건장한 사내도 힘든 일을 몸집 왜소한 아내가 해내다니, 그만큼 마음이 옹골찬 여자야. 살아야 한다는 의지도 누구보다도 강했고.

모성의 힘

아이들이 경산 학교에 다녔어. 경산에 나가려면 큰길까지 30여 분을 걸어 버스를 타야 했어. 학교 마치고 학원 들러 오면 어둑한 촌길을 걸어야 했지. 운전은 꿈도 꾸지 못하던 아내가 어느 날 운전면허를 땄어. 그러더니 아이들을 학교까지 태워주고 데려오더라고. 저게 모성의 힘인가 싶었지. 그렇게 1남 2녀는 아내의 보호 속에 성장할 수 있었어. 촌에 있는 것이 답답해 밖으로 잘 나갔어. 한 번은 술이 취해 교통사고를 냈는데, 참 난감했지. 아내가 알면 뒤집힐 일이었어. 그런데 아내가 선뜻 합의금을 들고 와 해결해 주더군. 뜻밖이었어. 아내에게 고마운 순간이 있다면 그 때가 가장 고마웠어. 아내가 집안 단속을 잘했기에 가정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다는 건 인정해.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길은 열심히 농사짓고 아끼는 것이 최선이었지.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야 동생들이나 자식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악착같이 일하고 모았어. 맏이가 많이 가져야 동생들 챙긴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조금 부렸지. 그랬기에 동생들 뒷바라지할 수 있었어. 동생들은 서운한 점도 있겠지만, 결과를 놓고 곱씹어보면 생각해보면 그것이 제일 잘 한 일인 것 같아. 동생들 모두 독립시키고 나서 살림이 안정되고 그나마 가진 것을 유지할 수 있었어. 물려받은 땅에 나도 많이 보탰지. 복숭아 농사를 지었는데, 토질이 좋아서 과실이 토실하고 달았어. 소득도 기대 이상이었고. 바깥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어. 내 땅이 있고 거기에 복숭아나무가 있고 나만 열심히 일하면 되는데, 복잡한 세상에 나가 이런저런 이해에 얽히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잖아.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 지워진 책임이 많다보니 정신없이 살았지. 이제 살만하다 싶어 정신차려보니 나이가 이렇게 먹어버렸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요즘 들어 실감이 나네. 그나저나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쑥스러워서 못한 건 아닌데, 경상도 남자의 특성이랄까. 내색하기가 뭣에서 속으로만 말했지. 촌에 시집와서 동생들까지 출가시키느라 고생 많았어. 고맙다 말은 못했지만 늘 고맙게 생각해. 돌아보면 못해준 것이 더 크게 보이네. 그 동안 고생 많았으니 이제부터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집 마당 사진

남에게 속지도 남을 속이지도 말라

자식에게는, 인생 40이면 불혹이야. 어디에도 미혹되지 않는 나이지. 남에게 속지도 남을 속이지도 말고, 남의 것 정당하게 취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나무를 심다

마당에 감나무는 내가 심었어. 가을이면 발갛게 익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야. 꽃이 붉고 오래 가는 배롱나무는 아내가 심었어. 그 옆 소나무는 제사 지낼 때 솔잎도 따고 음복술 부으려고 심었고. 그러고 보니 감나무는 나 같고 배롱나무는 아내 같네. 아내도 오래오래 붉으면 좋겠는데, 가만 보니 내가 고생을 너무 시켜서….

김진해씨와 그의 부인 사진

소회

여천 유곡이라고 하면 경산에서 소문난 골짜기였어. 이제는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한의대도 들어서고, 한편반갑지만 걱정도 되네. 마을 바로 앞에 공장이 들어오니까 처음에는 걱정 때문에 반대를 좀 했지. 동네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더군. 이제는 일도 좀 줄이고 여생을 편하게 살고 싶어. 아내에게 더 잘해주고 싶고. 어쩌겠어. 씨를 뿌리고 공을 들인 만큼 거두는 걸 업으로 삼았는데, 살면서 아내에게 공을 못 들였으니, 이제는 공 좀 들일까 싶네.

김진해씨의 젊은시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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