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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동은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버드내’‘유등천’‘유천’으로 부르다가 여천으로 불렸다.

마을의 남쪽으로 삼성산의 남산봉에서 설총이 성장하여 공부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삼성산 밑에서 원효, 설총, 일연 등 성인이 탄생한 곳이다.

명당의 조건

풍수지리학은 자연환경을 생활에 편리하고 유익하게 이용하려는 데에서 출발한다. 조상들은 음양오행과주역을 기초로 하여 경험에서 얻은 과학으로 땅과 사람의 관계를 밝혔다.

그리하여 수도를 정하고 건물의방향을 정하고 집을 정하고 묏자리를 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았다.

풍수지리학에서 명당은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양택(집터)에는 사람이 주거하기 좋은 조건이 있고 음택(묘터)에는 망자가 편히 쉴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마을인데, 사람의 집이 군락을 이루는마을 역시 조건이 있다.

첫째는 산수(山水)요 둘째는 지리(地理)이며 셋째는 인문(人文)이다.

이중환 선생은 우리나라의 지리를 탐사하고 그것을 이론으로 체계화했다. 선생의 지리에 관한 학문을 집대성한 책이 바로 택리지(擇里志)이다. 택리지에는 역사를 고찰한 실증적 방법을 기반으로 자연 환경에서가거지(살기 좋은 곳)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자연적 조건

지리(풍수), 산수(경치)

인문적 조건

생리(경제적 풍요로움), 인심(인간관계)

배산임수

우리네 촌락에서 배산임수는 가장 좋은 조건으로 여긴다. 산은 비바람을 막는 천혜의 방어벽이며 생존에 필요한 자연물을 제공하는 의식주의 보고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농사를 짓는 데 가장 중요한요소이다.

여천동 사진

명당

혈 앞의 평지와 명당수(하천), 혈 뒤의 주산, 맞은편의 안산과 조산, 왼쪽의 청룡과 오른쪽의 백호(산)가 있는 곳이 명당이다.

관악산과 경복궁의 해태상

어디에나 사람이 살기에 완벽한 땅은 없다. 경복궁 터를 명당으로 꼽아 궁궐을 짓기로 하였으나 조산인 관악산의 형세가 불이 타오르는 형상이기 때문에 화재의 위험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여 불을 다스리는 가상의 동물인 해태상을 경복궁 앞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풍수지리는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과 자연 환경의 단점을 인간 생활에 맞게 바꾸는 노력이 병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천동 사진

여천동은?

여천동은 삼성산 품에 있다. 삼성산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양쪽으로 내려와 마을 좌우로 흐른다. 사람으로치면 허리 아래인데, 여천동은 허벅지 안쪽에 있는 셈이다. 삼성산의 기혈이 모이는 자리이다.

큰 산을 등진 채 산줄기가 양쪽을 감싸는 지형은 사람이 살기에 좋은 자리이다. 산이 물과 나무와 먹을 것을 주고 비바람을 막아준다. 산이 삶에 필요한 자원을 주고 풍수해風水害까지 막아준다면 이보다 더한 자리가 있을까. 게다가 마을 앞에 문전옥답이 펼쳐진다면 마을의 입지로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여천동 사진

명당의 조건을 갖춘 마을

자인평야에서 바라보면 여천동은 작은 산에 가려져 있다. 이 산은 자라 모양으로 마을 앞에 가로로 엎드려 있다. 마을을 드나드는 것들을 감시하는 형상으로 이 산이 있어 여천동은 세상의 풍파가 많이 들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람도 자연을 닮는다. 아이가 성장할 때 그 마을을 둘러싼 자연은 인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마음이 맑은 사람이 길러진다. 전통이 있고 인심이 좋은 곳에서 인성이 길러진다. 지리적 요건이 좋은 곳이어야 경제적 기반이 형성된다. 앞에서 말한 산수, 인문, 지리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여천동은 좋은 산수를 타고 났다. 이러한 자연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대를 이어 전통을 지키고 넉넉한 인심을 형성했다. 근처에 한의대가 들어서면서 학문적인 환경도 조성되었다. 최근에 들어 마을 가까이 큰 길이 나면서 지리적 요건도 갖추어졌다. 이로써 여천동은 산수, 인문, 지리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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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4-02-27